불안한 시선으로 병원비 영수증을 바라보는 손길이 떨립니다. 한 달 생계급여 70만원으로 살아가는 이모(69)씨의 얼굴에는 깊은 주름이 새겨져 있습니다. 내년부터 시행되는 의료급여 본인부담 정률제 전환으로 인해, 그의 연간 의료비 부담은 12만원이나 늘어날 전망입니다. 이는 단순한 숫자의 변화가 아닌, 한 인간의 생존과 직결된 문제입니다.
정부의 새로운 정책, 그 실체를 들여다보다
정률제 전환의 핵심 내용
2025년부터 1종 의료급여 수급자들은 큰 변화를 맞이하게 됩니다. 지금까지 동네의원을 방문할 때 1000원만 내면 됐던 진료비가, 전체 진료비의 4%로 바뀌게 됩니다. 대학병원은 현행 2000원에서 8%로, 약국 이용 시에는 500원에서 약값의 2%로 본인부담금이 증가합니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히 숫자의 변경이 아닙니다. 저소득층의 의료 접근성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중대한 정책 전환입니다. 특히 만성질환자들에게는 더욱 큰 부담으로 다가올 것으로 예상됩니다.
정부의 논리와 그 이면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의료급여 본인부담이 정액제로 운영되어 실질 본인부담이 지속적으로 하락했다"고 설명합니다. 정부는 이번 제도 개편이 과잉의료 해소를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정부의 논리에는 몇 가지 중요한 맹점이 있습니다.
- 저소득층의 의료 이용이 과연 '과잉’인가?
- 경제적 부담 증가가 적절한 해결책이 될 수 있는가?
- 의료 접근성 제한이 또 다른 사회적 비용을 초래하지 않을까?
정책 변화가 가져올 현실적 영향
취약계층이 느끼는 실제 부담
현재 의료급여 1종 수급자의 대부분은 노인, 장애인, 그리고 중증 질환자입니다. 이들에게 의료기관 방문은 선택이 아닌 필수입니다. 중증 당뇨와 고지혈증 등 복합질환을 앓고 있는 이모씨의 사례는 이러한 현실을 잘 보여줍니다.
월 70만원의 생계급여로 생활하는 상황에서, 연간 의료비가 17만원에서 30만원으로 증가한다는 것은 결코 작은 변화가 아닙니다. 이는 한 끼 식사를 줄이거나, 난방비를 아끼는 등의 추가적인 생활고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의료 접근성 저하의 위험성
빈곤사회연대의 김윤영 활동가가 지적한 것처럼, "질병을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의료 이용을 제한하는 것은 저소득층의 건강권을 위협하는 처사"입니다. 필수적인 의료 서비스 이용을 미루게 되면, 결과적으로 더 심각한 건강 문제와 높은 의료비용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대안적 접근의 필요성
의료 전달체계 개선
과잉의료 문제의 해결책은 단순히 비용 부담을 늘리는 것이 아닌, 의료 전달체계의 효율화에서 찾아야 합니다.
- 일차의료 강화를 통한 예방적 건강관리 확대
- 의료기관 간 협력체계 구축
- 만성질환 관리 프로그램 확대
취약계층 지원 방안 모색
정부는 제도 변화와 함께 다음과 같은 보완책을 고려해야 합니다:
- 의료비 경감 제도 확대
- 만성질환자 특별 지원 프로그램 도입
- 의료급여 사례관리 강화
결론: 건강한 사회를 위한 진정한 해법
의료급여 제도는 우리 사회의 안전망입니다. 재정 효율화라는 목표는 중요하지만, 그것이 취약계층의 기본적 건강권을 위협해서는 안 됩니다.
정부는 제도 개편에 앞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 이 정책이 정말 필요한가?
- 더 나은 대안은 없는가?
- 부작용을 최소화할 방법은 무엇인가?
의료는 인간의 기본권입니다. 재정적 효율성만을 추구하다가 소중한 생명과 건강을 위협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단기적인 비용 절감이 아닌, 모든 시민의 건강권을 보장하는 지속가능한 의료체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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